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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ryun High School Graduates Association

기타 더듬어 찾으면 완벽한 친구도 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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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조
댓글 4건 조회 12,413회 작성일 12-02-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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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6회 30기 -

   친구끼리 둘이서 침식을 1년 반 정도 같이 하는데 갈등과 반목이 전혀 없지는 않았고 친구의 허물이

 전무 하다면 거짓이겠지..

 

   같은 하숙집 다른 방 친구들은 형편이 우리 보다는 좋아서 가끔 주전부리 하는 것도 알겠고 영양

  보충한다 면서 끼리끼리 외식하는 기미도 더러 보였지만 우리 둘은 한 번도 그런 호사는 누려보지

  못하고 건강을 챙긴다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버터(빠-다)를 헐값에 구입하여 뜨거운 밥에 간장

  과 비비고 간혹 계란도 한 개씩 넣어서 영양식 한다고 웃으며 먹은적이 있었다.

 

    둘 중에 누구의 제안인지는 몰라도 커피를 마시면 졸음이 덜 온다고 레이션 박스에 들었던 1회용

  봉지 커피를 구멍가게에서 공짜처럼 헐값에 갖어다가 숭늉에 두어봉 타서 나누어 마셨었다.

    미군들 전투식량인 레이션박스에는 여러가지 음식과 커피 설탕이 들었지만 커피는 쓴맛이라

  싫어하니 버리기도 하고 아주 싸게 팔기도 하였다.

    잠이 안올 때는 커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지만 잠이 퍼부을 때는 반응이 없음을 알았다.

 

    한 겨울 추운날 다른 방에는 군불을 때는데 우리는 군불 안 때고 하숙비 적게내는 약정으로 지내며

  담요를 덮어쓰고 책상앞에 앉으니 ...추위 고생은 제법 심했던가 싶다.

    시중 군이 몇 번인가 장작을 싸서 불좀 때자하고 나는 좀더 참아 보자고 버티다가 끝내 시중 군이

  폭발하며 하는 말이 " 네가 추위에 견디는 인내력으로 나와 대결을 해 보자는 것 같은데 극기와 인내

  력으로 말 하면 나도 결코 뒤질 수는 없으나 지금 시점에 내한경쟁은 아무 뜻이 없지 않으냐?" 는 뜻

  으로 원망과 힐책으로 따지고 들었었다.

 

    친구 최 시중 군의 말이야 백번 맞고 옳았지만  나의 사정이 그럴수가 없어서 미안 했다.

 

    나는 서울에서의 대학은 형편이 안되고 대구에서 진학 하라는 어른들의 뜻에 따라 의기 소침한

  상태로 고삼 1년을 보내는 중 졸업 두 어달 앞두고 고향에 갔더니 뜻하지 않게 얼마의 돈을 주시

  면서 두 어달 남은 기간 하숙비와 서울 시험 보러갈 여비이니 맞추어 아껴쓰라고 하셨다. 

     서울로 갈려면 어영부영 보낸 1년을 두 달 기간에 어떻게 만회하고 채워가야 할 것이며 한정된

  지갑이야 안 쓰면 된다해도 걱정이 태산이고 어깨가 천 만근으로 무거웠었다.

 

    이럴 참에 추위정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내 사정을 다 들은 최시중 군은 굳은 얼굴을

  펴면서 그런 사정을 진작 말 했으면 공연한 오해를 안 해도 되었을 것을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처음으로 생겼던 둘 사이의 갈등은 대화로 풀었고...

 

    하숙집 별채 툇마루 밑에 굵고 공이가 많은 원목 장작이 길게 주욱 쌓여 있었는데 짐작하니 아무

  도 도끼로 쪼갤 수가 없으니 버려진 듯 보였다.

    그래서 도끼를 구하면 시골 출신인 내가 쪼갤수 있고 주인 집과 같이 때면 되겠다 했더니 시중군

  이 즉시 주인 아주머니와 상의 하고 도끼도 있으니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 신다.

    장작 패는 그 일 쯤이야 내게는 정말 식은 죽먹기로 나머지 겨울은 따뜻하게 지낼수 있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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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의늑대님의 댓글

질풍의늑대 작성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 편의 수필을 본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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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조님의 댓글

김은조 작성일

볼품없는 글을 봐주시고 넘치는 찬사 까지 주시어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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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꿀땅이님의 댓글

눈꿀땅이 작성일

선배님의 글에서 향수를 느낍니다. <br />
선배님 시절보다 저의 중고교 학창생활이 조금 더 업데이트된 70년대...<br />
정확히는 70년대 후반이었기에<br />
장작 때는 일 보기가 대구에서는 드물어졌던 것 같습니다.<br />
<br />
어른들의 장작 패는 그런 그림 대신에<br />
<br />
큰 트럭 뒷바퀴만 보면 <br />
키를 견주어 보려던 제 어린 시절에<br />
아주 추운 겨울날 아침이면<br />
 트럭의 앞 "밤바" 구녕으로 시동거는 작업(쇠막대를 돌려서)... 킹킹킹 소리가 나고<br />
이런, 추웠지만 맑은 기억들이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br />
<br />
대구 방천에서 썰매를 지치던 일<br />
언젠가 대세는 날이 멋진스케이트로 기울고<br />
... 스케이트 사달라고 아버지를 조르고 졸랐던 게 제 시절의<br />
겨울입니다 ^ ^.<br />
<br />
장작 이후<br />
 연탄이 대신해서 좀 편해졌겠지만,<br />
그것이 내뿜는 연탄가스의 악몽이 반대급부가 돼 버렸음은 선배님 대학시절 <br />
혹은 그 이후이시겠고...<br />
<br />
잠시 저도<br />
70 년대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br />
<br />
글 짓는 고통(?)을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br />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br />
<br />
    통합 52 회 후배 김성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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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조님의 댓글

김은조 작성일

후배 김 성득님 반갑습니다<br />
 통합 52 회라면 22 년의 시차가 금방 지나갔군요 <br />
 오랜만에 동창회 홈페지를 찾으니 반갑게 후배님을 만나게 되네요<br />
<br />
    세월 이것이 참 묘하게 웃기니 가물가물 멀리 보이더니 지나고 보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그래요<br />
  내가 후배님 나이 때는 보이지도 않던 일흔 중반이 소리소문없이 전신을 감싸고 같이 놀자 한답니다. ㅎㅎ<br />
    살아 오면서 별로 태만하지는 않았는거 같아도 마음 두고도 못한게 너무 많아 지금 마음은 바쁘고 진척은<br />
  없고 그래서 속 태우는 경우도 더러 있답니다.<br />
<br />
    부디 후배님은 잊고 빠트린 일이 없도록 열심히 살피고 애쓰고 하여<br />
    뒷날 흐뭇한 지난날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br />
      고맙습니다.              김 은조